경북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산 58-1
이 비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순절< 殉節 >한 이희룡< 李希龍 >과 그의 아들 문진< 文軫 > 및 자부< 子婦 > 김씨< 金氏 >에 대한 충·효·열< 忠·孝·烈 >의 행적을 길이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공은 임진왜란때 무장< 武將 >으로 충주< 忠州 >에서 전사< 戰死 >하였고, 그의 아들 문진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으며, 자부 김씨는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들의 공을 기리어 숙종< 肅宗 > 36년(1710)에 증직< 贈職 >과 정각< 旌閣 >을 하사하였고, 영조< 英祖 > 42년(1766)에 비를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삼강묘비는 대제학< 大提學 > 남유용< 南有容 >이 비문< 碑文 >을 짓고 경주부윤< 慶州府尹 > 홍재< 洪梓 >가 썼으며 비의 전면< 前面 >은 15행, 후면은 16행으로 행당자수< 行當字數 >는 36자이며 비액< 碑額 >은 전서< 篆書 >, 기타는 해서체< 楷書體 >로 음각< 陰刻 >되어 있다. 비신< 碑身 >은 큰 편이나 귀부< 龜跌 >와 이수< 이首 >는 화강석< 花崗石 >에다 별다른 문양을 갖지 않았다.
이 비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순절< 殉節 >한 이희룡< 李希龍 >과 그의 아들 문진< 文軫 > 및 자부< 子婦 > 김씨< 金氏 >에 대한 충·효·열< 忠·孝·烈 >의 행적을 길이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공은 임진왜란때 무장< 武將 >으로 충주< 忠州 >에서 전사< 戰死 >하였고, 그의 아들 문진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으며, 자부 김씨는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들의 공을 기리어 숙종< 肅宗 > 36년(1710)에 증직< 贈職 >과 정각< 旌閣 >을 하사하였고, 영조< 英祖 > 42년(1766)에 비를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삼강묘비는 대제학< 大提學 > 남유용< 南有容 >이 비문< 碑文 >을 짓고 경주부윤< 慶州府尹 > 홍재< 洪梓 >가 썼으며 비의 전면< 前面 >은 15행, 후면은 16행으로 행당자수< 行當字數 >는 36자이며 비액< 碑額 >은 전서< 篆書 >, 기타는 해서체< 楷書體 >로 음각< 陰刻 >되어 있다. 비신< 碑身 >은 큰 편이나 귀부< 龜跌 >와 이수< 이首 >는 화강석< 花崗石 >에다 별다른 문양을 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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