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119
벽골제< 碧骨堤 >는 백제< 百濟 > 11대 비류왕< 比流王 > 27년(330)에 쌓은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이다. 그후 신라 원성왕< 元聖王 > 6년(790)과 고려 현종< 顯宗 > 및 인종< 仁宗 > 21년(1143)에 고쳐 쌓았다. 그후 조선시대 태종< 太宗 > 15년 (1415) 에 다시 쌓았으나 이익은 적고 폐단은 많다해서 폐지하고 말았다. 현재 그 유적은 김제군 부량면 포교리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월승리에 이르는 평지에 일직선으로 약3km에 달하는 둑이 남아있다. 그러나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 東津土地改良組合 >에서 이 둑을 관개용 수로로 개조하여 이용함으로써 그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다. 1975년 수문지 2개소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고대의 제방공사로서는 상상 이상의 대규모 토목공사였다는 점과 수문측량법< 水門測量法 >과 같은 고도의 측량술이 이용되었던 점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비는 태종 15년(1415) 에 벽골제를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고, 숙종< 肅宗 > 10년 (1684) 에 신털뫼 남쪽 정상에 다시 세웠다.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둑위로 옮겼으나 1980년 벽골제 정화사업때 둑 아래 현 위치로 옮겼다.
벽골제< 碧骨堤 >는 백제< 百濟 > 11대 비류왕< 比流王 > 27년(330)에 쌓은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이다. 그후 신라 원성왕< 元聖王 > 6년(790)과 고려 현종< 顯宗 > 및 인종< 仁宗 > 21년(1143)에 고쳐 쌓았다. 그후 조선시대 태종< 太宗 > 15년 (1415) 에 다시 쌓았으나 이익은 적고 폐단은 많다해서 폐지하고 말았다. 현재 그 유적은 김제군 부량면 포교리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월승리에 이르는 평지에 일직선으로 약3km에 달하는 둑이 남아있다. 그러나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 東津土地改良組合 >에서 이 둑을 관개용 수로로 개조하여 이용함으로써 그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다. 1975년 수문지 2개소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고대의 제방공사로서는 상상 이상의 대규모 토목공사였다는 점과 수문측량법< 水門測量法 >과 같은 고도의 측량술이 이용되었던 점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비는 태종 15년(1415) 에 벽골제를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고, 숙종< 肅宗 > 10년 (1684) 에 신털뫼 남쪽 정상에 다시 세웠다.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둑위로 옮겼으나 1980년 벽골제 정화사업때 둑 아래 현 위치로 옮겼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