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이 석조사자상< 石造獅子像 > 2구< 軀 >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國立慶州博物館 >에 진열되어 있으나, 원 위치는 경주< 慶州 >가 아니고 경북< 慶北 > 의성군< 義城郡 > 단촌면< 丹村面 > 관덕동< 觀德洞 >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이다. 곧, 현지에 남아 있는 의성< 義城 > 관덕동< 觀德洞 > 삼층석탑< 三層石塔 >(보물< 寶物 > 제< 第 >188호< 號 >)의 위층 기단 갑석< 甲石 > 4우< 隅 >에 암촵수 1쌍씩 4구< 軀 >의 석사자< 石獅子 >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중 1쌍은 1940년경 현장에서 분실되었고, 다른 암촵수 2마리만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보관되게 된 것이다. 2구< 軀 >의 석사자의 도난는 도굴꾼들 소행일 것인데, 그 유물은 거의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던가 짐작된다. 현존 2구< 軀 >의 석사자는 모두 전면< 全面 >에 마멸이 심하여 각부 조각의 세부를 분간하기 어려우며, 더우기 수사자는 파손되어 절단된 2 조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파손된 수사자는 각부 조각이 완전하지는 않으나 그 전체의 형태만은 식별할 수 있으니, 앞발을 세우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틀고 있는 모양을 한 것이 동적< 動的 >인 자세라 하겠다. 암사자는 뒷발을 구부리고 앞발을 뻗치고 앉아서 정면을 향하고 있다. 목에는 영락< 瓔珞 >이 조식< 彫飾 >되었고, 얼굴은 이< 耳 >·목< 目 >·구< 口 >·비< 鼻 >등이 닳긴 했으나, 그래도 각부의 윤곽은 뚜렷하여 날카로왔던 당초의 인상을 짐작케 한다. 양쪽 앞발 사이의 배 밑에는 3마리의 새끼 사자가 있어서 그 중 1마리는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데, 이러한 유례는 흔하지 않다 하겠다. 이 석상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고 그 형태가 우아하나 마멸된 탓인지 용맹의 기상이 적어 보인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원형을 짐작케 하고 있으니 꼿꼿이 세운 두 발의 양쪽 발톱이 날카롭다든가 앞가슴과 양쪽 발에 근육이 나타나고 있는 것 등은 힘찬 조각술의 일면을 보이고 있는 바라 하겠다. 대부분의 석사자상이 당자< 當者 >만의 조각인데, 이 석상< 石像 >은 예외로서 이른바 아사포유형< 兒獅哺乳形 >이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이것은 최고 유일한 예로서 매우 희귀한 석사자라 하겠다. 이 석사자는 이미 알려진 통일신라< 統一新羅 >시대의 석사자상과 비교할 때 그 형태나 각부의 조각이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인데, 그 조성 연대는 이들 석사자상이 놓여 있던 의성< 義城 > 관덕동< 觀德洞 > 3층석탑< 3層石塔 >과 같은 때로 추정하여 9세기 초엽의 작품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석조사자상< 石造獅子像 > 2구< 軀 >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國立慶州博物館 >에 진열되어 있으나, 원 위치는 경주< 慶州 >가 아니고 경북< 慶北 > 의성군< 義城郡 > 단촌면< 丹村面 > 관덕동< 觀德洞 >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이다. 곧, 현지에 남아 있는 의성< 義城 > 관덕동< 觀德洞 > 삼층석탑< 三層石塔 >(보물< 寶物 > 제< 第 >188호< 號 >)의 위층 기단 갑석< 甲石 > 4우< 隅 >에 암촵수 1쌍씩 4구< 軀 >의 석사자< 石獅子 >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중 1쌍은 1940년경 현장에서 분실되었고, 다른 암촵수 2마리만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보관되게 된 것이다. 2구< 軀 >의 석사자의 도난는 도굴꾼들 소행일 것인데, 그 유물은 거의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던가 짐작된다. 현존 2구< 軀 >의 석사자는 모두 전면< 全面 >에 마멸이 심하여 각부 조각의 세부를 분간하기 어려우며, 더우기 수사자는 파손되어 절단된 2 조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파손된 수사자는 각부 조각이 완전하지는 않으나 그 전체의 형태만은 식별할 수 있으니, 앞발을 세우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틀고 있는 모양을 한 것이 동적< 動的 >인 자세라 하겠다. 암사자는 뒷발을 구부리고 앞발을 뻗치고 앉아서 정면을 향하고 있다. 목에는 영락< 瓔珞 >이 조식< 彫飾 >되었고, 얼굴은 이< 耳 >·목< 目 >·구< 口 >·비< 鼻 >등이 닳긴 했으나, 그래도 각부의 윤곽은 뚜렷하여 날카로왔던 당초의 인상을 짐작케 한다. 양쪽 앞발 사이의 배 밑에는 3마리의 새끼 사자가 있어서 그 중 1마리는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데, 이러한 유례는 흔하지 않다 하겠다. 이 석상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고 그 형태가 우아하나 마멸된 탓인지 용맹의 기상이 적어 보인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원형을 짐작케 하고 있으니 꼿꼿이 세운 두 발의 양쪽 발톱이 날카롭다든가 앞가슴과 양쪽 발에 근육이 나타나고 있는 것 등은 힘찬 조각술의 일면을 보이고 있는 바라 하겠다. 대부분의 석사자상이 당자< 當者 >만의 조각인데, 이 석상< 石像 >은 예외로서 이른바 아사포유형< 兒獅哺乳形 >이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이것은 최고 유일한 예로서 매우 희귀한 석사자라 하겠다. 이 석사자는 이미 알려진 통일신라< 統一新羅 >시대의 석사자상과 비교할 때 그 형태나 각부의 조각이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인데, 그 조성 연대는 이들 석사자상이 놓여 있던 의성< 義城 > 관덕동< 觀德洞 > 3층석탑< 3層石塔 >과 같은 때로 추정하여 9세기 초엽의 작품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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