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 89
거대한 암벽이 ㄷ자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 石室 >을 이루었는데 원래는 여기서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 이른바 석굴법당< 石窟法堂 >을 만들었었다. 신라< 新羅 > 최초의 석굴사원< 石窟寺院 >인 셈이다. 이 석굴의 바위면에 모두 10구의 불보살상< 佛菩薩像 >을 새기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 틔어진 곳이 입구였는데 이곳으로 들어서서 왼쪽이 되는 북쪽 바위에 삼존불상< 三尊佛像 >이 왼손으로 동쪽을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 本尊佛 >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 안쪽에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 >이 얕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는데 삼국시대< 三國時代 > 반가사유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 밑쪽에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공양< 供養 > 올리는 공양상2구< 供養像二軀 >와 스님 한 분이 역시 얕은 돋을새김으로 새겨졌는데 이 역시 신라인< 新羅人 >의 모습을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기서 바위가 단절되어 쪽문처럼 틔었고 다시 바위가 솟아 있는데 이 바위면에 거대한 불상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비록 딱딱하고 서툰 듯한 솜씨로 조성된 면도 있지만 중후한 체구와 둥글고 동안< 童顔 >적인 얼굴, U자 모양을 이루는 법의< 法衣 > 안에 내의를 묶은 띠매듭 등 전선방사< 傳禪房寺 > 삼존불< 三尊佛 >(보물 제63호)의 양식적 특징과 친연성< 親緣性 >이 강하다. 명문< 銘文 >에 의하면 장륙< 丈六 >의 미륵불상< 彌勒佛像 >이 확실하므로 당시의 신앙 경향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불상이라 하겠다. 동쪽과 남쪽의 바위면에는 마멸로 희미해진 선각< 線刻 >의 마애보살상< 磨崖菩薩像 >이 1구씩 새겨져 본존불과 함께 삼존불로 배치된 것 같으며 남쪽 바위 보살상 안쪽으로 명문이 새겨져 있다. 어쨌든 이 석굴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자 7세기 전반기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이 석불상군은 고신라< 古新羅 > 불교미술< 佛敎美術 >이나 신앙연구< 信仰硏究 >에 귀중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거대한 암벽이 ㄷ자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 石室 >을 이루었는데 원래는 여기서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 이른바 석굴법당< 石窟法堂 >을 만들었었다. 신라< 新羅 > 최초의 석굴사원< 石窟寺院 >인 셈이다. 이 석굴의 바위면에 모두 10구의 불보살상< 佛菩薩像 >을 새기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 틔어진 곳이 입구였는데 이곳으로 들어서서 왼쪽이 되는 북쪽 바위에 삼존불상< 三尊佛像 >이 왼손으로 동쪽을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 本尊佛 >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 안쪽에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 >이 얕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는데 삼국시대< 三國時代 > 반가사유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 밑쪽에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공양< 供養 > 올리는 공양상2구< 供養像二軀 >와 스님 한 분이 역시 얕은 돋을새김으로 새겨졌는데 이 역시 신라인< 新羅人 >의 모습을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기서 바위가 단절되어 쪽문처럼 틔었고 다시 바위가 솟아 있는데 이 바위면에 거대한 불상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비록 딱딱하고 서툰 듯한 솜씨로 조성된 면도 있지만 중후한 체구와 둥글고 동안< 童顔 >적인 얼굴, U자 모양을 이루는 법의< 法衣 > 안에 내의를 묶은 띠매듭 등 전선방사< 傳禪房寺 > 삼존불< 三尊佛 >(보물 제63호)의 양식적 특징과 친연성< 親緣性 >이 강하다. 명문< 銘文 >에 의하면 장륙< 丈六 >의 미륵불상< 彌勒佛像 >이 확실하므로 당시의 신앙 경향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불상이라 하겠다. 동쪽과 남쪽의 바위면에는 마멸로 희미해진 선각< 線刻 >의 마애보살상< 磨崖菩薩像 >이 1구씩 새겨져 본존불과 함께 삼존불로 배치된 것 같으며 남쪽 바위 보살상 안쪽으로 명문이 새겨져 있다. 어쨌든 이 석굴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자 7세기 전반기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이 석불상군은 고신라< 古新羅 > 불교미술< 佛敎美術 >이나 신앙연구< 信仰硏究 >에 귀중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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