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4
부안 유천리 요지는 전남 강진 요지와 함께 고려자기의 2대 핵심요지로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29년에 발견된 이래 미처 자세한 조사연구를 거칠 사이도 없이 1930년대부터 심한 도굴로 최고의 파편을 간직한 요지의 퇴적층은 거의 파괴되었으며, 그외에도 농지경작으로 인한 현상변경이 일어나 보존상태는 극히 불량하다. 그동안 본격적인 발굴조사 없이 1967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부 파괴된 퇴적층에 대한 시굴조사를 하여 파편을 수습하였을 뿐이며, 다만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일제시 이곳에서 도굴된 5000여점의 파편을 1958년에 구입하여 이를 정리해 1983년에 그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유천리 일대의 요지는 약 40개소로, 곰소만이 있는 바닷가 앞의 광활한 들판과 야산 일대에 위치하며, 토성으로 둘러싸인 안쪽 구릉에 주로 분포한다. 현재 유천리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의 남쪽에 대부분 밀집되어 있으며, 이 일대는 경작지와 과수원으로 변해 있는데, 도로 북측의 야산 구릉에도 수개소가 산재하고 있다. 이들 요지군에는 11세기 말·12세기 초의 것도 약간 있으나, 대체로 12세기 중엽에서 13세기 전반에 걸친 것이 많으며, 그중 가장 우수한 파편이 나오는 요지는 지정표석이 서있는 동쪽 밭의 12호 요지 일대이다. 이곳에서 출토하는 자편들은 12세기 중엽에서 후반에 걸치는 각종의 최상급의 고려자기를 총망라하고 있는데, 강진의 사당리 당전부락의 우수한 가마의 그것과 거의 동질이면서 백자·진자 등은 훨씬 양이 많고 다양하다. 지정표석이 있는 곳에서도 각양각색의 순청사·상감청자들이 출토되었으며, 철화청자·철채상감청자들도 발견된다. 그동안 알려진 유천리 요지 출토의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강진 요지에 버금가는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왕실과 귀족층 소용의 최상급 자기들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형에는 완·발·접시를 포함한 각종 매병·병·탁잔·화분·합<盒> 등의 일상용기뿐만 아니라 청자판<靑磁板>·장고·베개·의자 등이 보인다. 음각·양각·투각·상형<象形>으로 꾸며진 절정기의 비색청자류와 다양한 문양이 베풀어진 수준 높은 상감청자류 등 고려 자기에 나타나는 각종의 고급 자기류를 이곳에서 번조하였으며, 특히 고려백자 상감백자·진사백자·투각곽<透刻곽> 등은 이곳에서 유난히 발달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공개한 1m 이상의 대매병류<大梅甁類>는 크기·문양·제작기술이 가히 압도적이어서 고려자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유천리 요지의 또 하나의 특징이 되고 있다. 또한 '효문<孝文>', '조청<照淸>' 등의 명문이 나와 고려도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전남 강진 요지와 함께 고려자기의 2대 핵심요지로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29년에 발견된 이래 미처 자세한 조사연구를 거칠 사이도 없이 1930년대부터 심한 도굴로 최고의 파편을 간직한 요지의 퇴적층은 거의 파괴되었으며, 그외에도 농지경작으로 인한 현상변경이 일어나 보존상태는 극히 불량하다. 그동안 본격적인 발굴조사 없이 1967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부 파괴된 퇴적층에 대한 시굴조사를 하여 파편을 수습하였을 뿐이며, 다만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일제시 이곳에서 도굴된 5000여점의 파편을 1958년에 구입하여 이를 정리해 1983년에 그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유천리 일대의 요지는 약 40개소로, 곰소만이 있는 바닷가 앞의 광활한 들판과 야산 일대에 위치하며, 토성으로 둘러싸인 안쪽 구릉에 주로 분포한다. 현재 유천리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의 남쪽에 대부분 밀집되어 있으며, 이 일대는 경작지와 과수원으로 변해 있는데, 도로 북측의 야산 구릉에도 수개소가 산재하고 있다. 이들 요지군에는 11세기 말·12세기 초의 것도 약간 있으나, 대체로 12세기 중엽에서 13세기 전반에 걸친 것이 많으며, 그중 가장 우수한 파편이 나오는 요지는 지정표석이 서있는 동쪽 밭의 12호 요지 일대이다. 이곳에서 출토하는 자편들은 12세기 중엽에서 후반에 걸치는 각종의 최상급의 고려자기를 총망라하고 있는데, 강진의 사당리 당전부락의 우수한 가마의 그것과 거의 동질이면서 백자·진자 등은 훨씬 양이 많고 다양하다. 지정표석이 있는 곳에서도 각양각색의 순청사·상감청자들이 출토되었으며, 철화청자·철채상감청자들도 발견된다. 그동안 알려진 유천리 요지 출토의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강진 요지에 버금가는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왕실과 귀족층 소용의 최상급 자기들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형에는 완·발·접시를 포함한 각종 매병·병·탁잔·화분·합<盒> 등의 일상용기뿐만 아니라 청자판<靑磁板>·장고·베개·의자 등이 보인다. 음각·양각·투각·상형<象形>으로 꾸며진 절정기의 비색청자류와 다양한 문양이 베풀어진 수준 높은 상감청자류 등 고려 자기에 나타나는 각종의 고급 자기류를 이곳에서 번조하였으며, 특히 고려백자 상감백자·진사백자·투각곽<透刻곽> 등은 이곳에서 유난히 발달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공개한 1m 이상의 대매병류<大梅甁類>는 크기·문양·제작기술이 가히 압도적이어서 고려자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유천리 요지의 또 하나의 특징이 되고 있다. 또한 '효문<孝文>', '조청<照淸>' 등의 명문이 나와 고려도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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