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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선생묘 -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대학자인 최항 선생의 묘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광주군 퇴촌면 산11-1

조선< 朝鮮 > 초기< 初期 >의 문신이며 대학자인 최항(1409∼1474) 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자< 字 >는 정부< 貞父 >, 호< 號 >는 동량< 동梁 >, 시호< 諡號 >는 문청< 文淸 >이며 본관< 本貫 >은 삭령< 朔寧 >이다. 세종< 世宗 > 16년(1434) 알성시< 謁聖試 >에 장원급제하여 1443년 집현전< 集賢殿 > 학사< 學士 >가 되어 훈민정음< 訓民正音 > 창제에 참여하였고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를 주해< 註解 >하였으며 『세종실록< 世宗實錄 >』, 『문종실록< 文宗實錄 >』을 편찬하였고, 『고려사< 高麗史 >』를 개찬< 改撰 >하였다. 단종< 端宗 > 원년< 元年 >(1453)에 승지< 承旨 >로 있으면서 계유정난< 癸酉靖難 >에 공을 세워 정난공신< 靖難功臣 > 1등이 되고, 도승지< 都承旨 >에 올랐다가 곧 이조참판< 吏曹參判 >이 되었다. 세조< 世祖 > 원년(1455)에 좌익공신< 左翼功臣 > 2등이 되고 형조< 刑曹 >, 공조판서< 工曹判書 >를 역임하였다. 세조< 世祖 > 9년(1463)에 『동국통감< 東國通鑑 >』을 찬수하기 시작하였으며, 1466년 우의정< 右議政 >을 거쳐 영의정< 領議政 >이 되었다. 예종< 睿宗 > 원년(1469) 『경국대전< 經國大典 >』을 편찬하여 왕에게 바쳤다. 선생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학자 관료로서 문물제도의 정비에 큰 공을 세웠고 역사< 歷史 >·어학< 語學 >에 조예< 造詣 >가 깊었으며 문장을 잘 지어 명< 明 >나라와의 외교 문서를 많이 지었다. 경내에는 상석< 床石 >, 향로석< 香爐石 >, 문관석< 文官石 >, 석등< 石燈 >과 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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