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백암면 석천리 산28-1
유형원(1622∼1673) 선생은 본관< 本貫 >이 문화< 文化 >이며, 자< 字 >를 덕부< 德夫 >, 호< 號 >를 반계< 磻溪 >라 하였다. 선생은 조선< 朝鮮 > 광해군< 光海君 > 14년(1622) 서울에서 출생,5세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7세에는 서경< 西經 >을 읽고, 20여세에는 문장이 뛰어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선생은 조부의 뜻을 받들어 단 한 번 과거를 치러 진사< 進士 >가 되어 선비로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였을 뿐, 관직< 官職 >에 관심이 없었다. 선생은 효종< 孝宗 > 4년(1653) 전라도< 全羅道 > 부안< 扶安 >에 내려가 일생을 농촌에 묻혀 제자를 양성하며 농촌 사회의 현실을 스스로 체험해가면서 학문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선생은 야인< 野人 >으로 농민 생활 개선을 위하여 주력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제도를< 制度 > 근복적으로 개혁< 改革 >하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 政治 >, 경제< 經濟 >, 문화< 文化 >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실학< 實學 >의 선구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유형원(1622∼1673) 선생은 본관< 本貫 >이 문화< 文化 >이며, 자< 字 >를 덕부< 德夫 >, 호< 號 >를 반계< 磻溪 >라 하였다. 선생은 조선< 朝鮮 > 광해군< 光海君 > 14년(1622) 서울에서 출생,5세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7세에는 서경< 西經 >을 읽고, 20여세에는 문장이 뛰어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선생은 조부의 뜻을 받들어 단 한 번 과거를 치러 진사< 進士 >가 되어 선비로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였을 뿐, 관직< 官職 >에 관심이 없었다. 선생은 효종< 孝宗 > 4년(1653) 전라도< 全羅道 > 부안< 扶安 >에 내려가 일생을 농촌에 묻혀 제자를 양성하며 농촌 사회의 현실을 스스로 체험해가면서 학문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선생은 야인< 野人 >으로 농민 생활 개선을 위하여 주력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제도를< 制度 > 근복적으로 개혁< 改革 >하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 政治 >, 경제< 經濟 >, 문화< 文化 >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실학< 實學 >의 선구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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