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산36
민영환< 閔泳煥 >(1861∼1905) 선생은 고종< 高宗 > 15년(1878) 정시문과< 庭試文科 >에 병과< 丙科 >로 급제한 후 예조판서< 禮曹判書 >, 한성 부판윤< 漢城 副判尹 >, 미국 공사 등의 요직을 지내고, 고종 건양< 建陽 > 원년(1896) 3월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특명 전권대사로 참례하고 돌아온 후, 군부대신< 軍部大臣 >에 임명되어 다시 서구 6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왔다. 선생은 이러한 해외여행을 통해 새 문물에 일찍 눈을 떠 국가 제반제도의 개혁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건양< 建陽 > 원년< 元年 >(1896) 독립협회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시정의 개혁을 시도했으며, 친일적인 각료들과 대립하여 일본의 내정간섭을 성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광무< 光武 > 9년(1905)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선생을 조병세< 趙秉世 >와 뎌불어 백관을 인솔하고 궁궐에 나가 적극적으로 조약의 철회를 주장하였으나 관철되지 않자 전동< 典洞 > 이완식< 李完植 >의 집에 가 유서 3통을 남기고 자결하여 대한제국< 大韓帝國 >의 억울함과 기개를 만천하에 선포했다. 고정의 묘정< 廟庭 >에 배향되었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 重章 >이 수여되었다.
민영환< 閔泳煥 >(1861∼1905) 선생은 고종< 高宗 > 15년(1878) 정시문과< 庭試文科 >에 병과< 丙科 >로 급제한 후 예조판서< 禮曹判書 >, 한성 부판윤< 漢城 副判尹 >, 미국 공사 등의 요직을 지내고, 고종 건양< 建陽 > 원년(1896) 3월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특명 전권대사로 참례하고 돌아온 후, 군부대신< 軍部大臣 >에 임명되어 다시 서구 6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왔다. 선생은 이러한 해외여행을 통해 새 문물에 일찍 눈을 떠 국가 제반제도의 개혁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건양< 建陽 > 원년< 元年 >(1896) 독립협회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시정의 개혁을 시도했으며, 친일적인 각료들과 대립하여 일본의 내정간섭을 성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광무< 光武 > 9년(1905)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선생을 조병세< 趙秉世 >와 뎌불어 백관을 인솔하고 궁궐에 나가 적극적으로 조약의 철회를 주장하였으나 관철되지 않자 전동< 典洞 > 이완식< 李完植 >의 집에 가 유서 3통을 남기고 자결하여 대한제국< 大韓帝國 >의 억울함과 기개를 만천하에 선포했다. 고정의 묘정< 廟庭 >에 배향되었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 重章 >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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