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역북동 산5
채제공< 蔡濟恭 >(1720∼1799) 선생의 자< 字 >는 백규< 伯規 >, 호< 號 >는 번암< 樊巖 >, 시호< 諡號 >는 문숙< 文肅 >이라 하였고 본관< 本貫 >은 평강< 平康 >이다. 선생은 영조< 英祖 > 19년(1743)에 문과< 文科 >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吏曹參判 >, 우·좌의정< 右·左議政 >, 영의정< 領議政 > 등 여러 관직을 거쳤고, 『열성지장< 列聖誌狀 >』과 『국조보감< 國朝寶鑑 >』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선생은 영조조< 英祖朝 >에서 정조조< 正祖朝 >에 걸친 기간 중 정치< 政治 >, 경제< 經濟 >, 사회< 社會 >, 문화< 文化 > 등 각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기었고, 특히 수원성곽< 水原城郭 > 축성에 많은 공을 세워 정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정조 23년(1799)에 별세하니 정조가 친히 제문을 지어 제사 지내었다.
채제공< 蔡濟恭 >(1720∼1799) 선생의 자< 字 >는 백규< 伯規 >, 호< 號 >는 번암< 樊巖 >, 시호< 諡號 >는 문숙< 文肅 >이라 하였고 본관< 本貫 >은 평강< 平康 >이다. 선생은 영조< 英祖 > 19년(1743)에 문과< 文科 >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吏曹參判 >, 우·좌의정< 右·左議政 >, 영의정< 領議政 > 등 여러 관직을 거쳤고, 『열성지장< 列聖誌狀 >』과 『국조보감< 國朝寶鑑 >』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선생은 영조조< 英祖朝 >에서 정조조< 正祖朝 >에 걸친 기간 중 정치< 政治 >, 경제< 經濟 >, 사회< 社會 >, 문화< 文化 > 등 각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기었고, 특히 수원성곽< 水原城郭 > 축성에 많은 공을 세워 정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정조 23년(1799)에 별세하니 정조가 친히 제문을 지어 제사 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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