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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장군묘 - 조선시대 무신 이완 장군의 묘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여주군 여주읍 상1∼2리 산19-1

조선< 朝鮮 > 효종< 孝宗 >, 현종< 顯宗 > 때의 무신< 武臣 > 이완(1602∼1674) 장군의 묘이다. 장군의 자< 字 >는 징지< 澄之 >, 호< 號 >는 매죽헌< 梅竹軒 >, 시호< 諡號 >는 정익< 貞翼 >, 본관< 本貫 >은 경주< 慶州 >이다. 인조< 仁祖 > 2년(1624) 무과에 급제한 후 1631년 평안도< 平安道 > 병마절도사< 兵馬節度使 >가 되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丙子胡亂 > 때 김자점< 金自點 > 원수< 元帥 > 휘하의 별장< 別將 >이 되어 정방산성< 正方山城 >에서 공을 세우고 함경도< 咸鏡道 > 병마절도사, 1643년 경기도< 京畿道 > 수군절도사< 水軍節度使 >가 되었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한 후 송시열< 宋時烈 > 등과 북벌< 北伐 >을 계획할 때 어영대장< 御營大將 >으로 발탁되고, 다시 훈련대장< 訓練大將 >이 되어 신무기의 제조, 성곽의 개수, 신축 등 전쟁 준비를 하였다. 효종 6년(1655)에 한성부< 漢城府 > 판윤< 判尹 >이 되었고 공조판서< 工曹判書 >를 지낸 뒤 다시 훈련대장이 되었으나, 1659년 효종의 승하< 昇遐 >로 북벌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현종 때 수어사< 守御使 >로 임명되었고, 포도대장< 捕盜大將 >을 거처 우의정< 右議政 >에 이르렀다. 묘역에는 곡담< 曲垣 >, 석인< 石人 > 4개, 석등< 石燈 > 1개가 배치되었으며 묘비< 墓碑 >와 상석< 床石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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