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군 비봉면 남전리 산145
조선< 朝鮮 > 세조< 世祖 > 때의 무신< 武臣 >인 남이(1441∼1468)의 묘이다. 장군의 본관< 本貫 >은 의령< 宜寧 >이고 태종< 太宗 >의 외손< 外孫 >이며 좌의정< 左議政 > 권람< 權擥 >의 사위다. 세조 3년(1457) 17세 때 무과< 武科 >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 李施愛 >의 난< 亂 >(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족< 女眞族 >의 건주위< 建州衛 >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렀다. 적개공신< 敵愾功臣 >이 되고 훈< 勳 > 1등이 되어 26세의 나이로 병조판서< 兵曹判書 >가 되었다. 예종< 睿宗 >이 즉위하자 1468년 유자광< 柳子光 >의 무고로 역모를 도모한다 하여 처형되었다. 순조< 純祖 > 18년(1818)에 관작< 官爵 >이 복귀되었고, 시호< 諡號 >는 충무< 忠武 >이다.
조선< 朝鮮 > 세조< 世祖 > 때의 무신< 武臣 >인 남이(1441∼1468)의 묘이다. 장군의 본관< 本貫 >은 의령< 宜寧 >이고 태종< 太宗 >의 외손< 外孫 >이며 좌의정< 左議政 > 권람< 權擥 >의 사위다. 세조 3년(1457) 17세 때 무과< 武科 >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 李施愛 >의 난< 亂 >(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족< 女眞族 >의 건주위< 建州衛 >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렀다. 적개공신< 敵愾功臣 >이 되고 훈< 勳 > 1등이 되어 26세의 나이로 병조판서< 兵曹判書 >가 되었다. 예종< 睿宗 >이 즉위하자 1468년 유자광< 柳子光 >의 무고로 역모를 도모한다 하여 처형되었다. 순조< 純祖 > 18년(1818)에 관작< 官爵 >이 복귀되었고, 시호< 諡號 >는 충무< 忠武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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