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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선생묘 -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산3

이곳은 고려말< 高麗末 >의 충신< 忠臣 >이며 동방< 東方 > 이학< 理學 >의 시조로 추앙되던 포은< 圃隱 > 정몽주< 鄭夢周 >(1337∼1392) 선생< 先生 >의 묘소< 墓所 >이다. 선생의 자는 달가< 達可 >, 호< 號 >는 포은, 시호는 문충< 文忠 >이며 본관< 本貫 >은 연일< 延日 >로 정관< 鄭瓘 >의 아들이다. 공민왕< 恭愍王 > 9년(1360) 과거에 장원급제후 예문관검열< 藝文館檢閱 >, 예부정랑< 禮部正郎 >, 대사성< 大司成 >, 문하찬성< 門下贊成 > 등 여러 벼슬에 올랐다. 5부학당< 五部學堂 >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향교< 鄕校 >를 세워 유학< 儒學 >을 진흥하고 우리나라 성리학< 性理學 >의 기초를 세웠으며, 한편으로는 일본< 日本 >에 가서 왜구< 倭寇 >를 금지< 禁止 >할 것을 교섭하는 등 외교활동도 하였다. 이성계< 李成桂 >의 세력이 날로 커져 정도전< 鄭道傳 > 등이 그를 왕< 王 >으로 추대하려 하자 끝까지 고려왕실< 高麗王室 >을 지키려 하다가 선죽교< 善竹橋 >에서 피살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선생이 순절< 殉節 >하신 뒤 풍덕군< 豊德郡 >에 묘를 썼다가 후에 고향인 경북< 慶北 > 영천< 永川 >으로 천묘할 때 면례행렬< 緬禮行列 >이 용인군< 龍仁郡 > 수지면< 水持面 > 경계에 이르자 앞에 세웠던 명정< 銘旌 >이 바람에 날아가 이곳 현 묘소 위치에 떨어져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후에 영의정< 領議政 >에 증직< 贈職 >되고 시호< 諡號 >가 내려졌다. 나라를 향한 일편단심< 一片丹心 >의 애국충절< 愛國忠節 >은 지금도 생생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산 교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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