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시 평내동 426-1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의 시집으로 왕명으로 친히 나라에서 목재와 목수를 보내 지어 주었다고 해서 '궁집'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이 집은 북한강변< 北漢江邊 >에 위치< 位置 >한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 산이 둘러싸며 국< 局 > 이 좁고 주밀< 周密 >하다. 산자락 한줄기가 집의 뒤를 감싸돌고 다른 줄기가 집 앞 50m쯤 거리에 조그만 동산을 만들었는데 이 동산이 바로 안산< 案山 >이며 여기에 집주인 옹주의 묘< 墓 >가 조성< 造成 >되어서 항상 사랑누마루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평면은 전체적으로 기자< 己字 > 모양인데 꼬리가 거꾸로 돌아 앉았으며 건물이 한덩어리로 연결< 連結 >되었다. 그러나 문간채는 일찍이 헐린 듯 하며 담장이 공간< 空間 >의 구분< 區分 >을 대신하고 있다. 안채는 안방과 대청을 일자< 一字 >로 두는 남도방식< 南道方式 >으로서 사대부< 士大夫 >집에서 가끔 쓰이는 ㅁ자< 字 > 집이다. 서북쪽에는 부엌, 안방, 대청을 일자< 一字 >로 배치< 配置 >하고 꺾어져서 양쪽 측면< 側面 >으로 동쪽에는 건넌방과 부엌, 서쪽은 아랫방과 사랑뒷마루가 놓였다. 안마당 전면< 前面 >은 동쪽에서부터 대문간과 광, 책방의 차례이고 귀퉁이에 연결하여 커다란 사랑방이 시설된다. 사랑방 서쪽은 사랑대청이며 서쪽 끝에는 높다란 누마루가 사랑툇마루 앞으로 쑥 내밀었다. 구조< 構造 >는 안방과 사랑부분을 모두 1고주5량으로 하여 보간을 2간< 間 > 너비로 처리했고 기타 안채 날개와 중문간을 맞걸이3량으로 하였다. 사랑채의 모든 샛문과 전면문, 안대청의 샛문과 전면문이 모두 분합문< 分閤門 >으로 되었으며 특히 사랑채는 툇마루 앞에도 분합문을 달아서 공간을 구분짓고 있다. 이 집은 산기슭에 위치< 位置 >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조경< 造景 >이 잘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 문간채가 있었음직한 자리에는 소나무 2그루가 있으며 사랑방 앞에도 정원수들이 심어졌다. 뒤뜰에는 감나무와 앵두, 오동나무, 철쭉, 회양목, 호두나무 등이 자라며 뒷산은 밤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정원축조물< 庭園築造物 >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집은 옹주의 시집으로서 궁집이라고 불리웠으며 대략 18세기< 世紀 > 말< 末 >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의 시집으로 왕명으로 친히 나라에서 목재와 목수를 보내 지어 주었다고 해서 '궁집'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이 집은 북한강변< 北漢江邊 >에 위치< 位置 >한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 산이 둘러싸며 국< 局 > 이 좁고 주밀< 周密 >하다. 산자락 한줄기가 집의 뒤를 감싸돌고 다른 줄기가 집 앞 50m쯤 거리에 조그만 동산을 만들었는데 이 동산이 바로 안산< 案山 >이며 여기에 집주인 옹주의 묘< 墓 >가 조성< 造成 >되어서 항상 사랑누마루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평면은 전체적으로 기자< 己字 > 모양인데 꼬리가 거꾸로 돌아 앉았으며 건물이 한덩어리로 연결< 連結 >되었다. 그러나 문간채는 일찍이 헐린 듯 하며 담장이 공간< 空間 >의 구분< 區分 >을 대신하고 있다. 안채는 안방과 대청을 일자< 一字 >로 두는 남도방식< 南道方式 >으로서 사대부< 士大夫 >집에서 가끔 쓰이는 ㅁ자< 字 > 집이다. 서북쪽에는 부엌, 안방, 대청을 일자< 一字 >로 배치< 配置 >하고 꺾어져서 양쪽 측면< 側面 >으로 동쪽에는 건넌방과 부엌, 서쪽은 아랫방과 사랑뒷마루가 놓였다. 안마당 전면< 前面 >은 동쪽에서부터 대문간과 광, 책방의 차례이고 귀퉁이에 연결하여 커다란 사랑방이 시설된다. 사랑방 서쪽은 사랑대청이며 서쪽 끝에는 높다란 누마루가 사랑툇마루 앞으로 쑥 내밀었다. 구조< 構造 >는 안방과 사랑부분을 모두 1고주5량으로 하여 보간을 2간< 間 > 너비로 처리했고 기타 안채 날개와 중문간을 맞걸이3량으로 하였다. 사랑채의 모든 샛문과 전면문, 안대청의 샛문과 전면문이 모두 분합문< 分閤門 >으로 되었으며 특히 사랑채는 툇마루 앞에도 분합문을 달아서 공간을 구분짓고 있다. 이 집은 산기슭에 위치< 位置 >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조경< 造景 >이 잘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 문간채가 있었음직한 자리에는 소나무 2그루가 있으며 사랑방 앞에도 정원수들이 심어졌다. 뒤뜰에는 감나무와 앵두, 오동나무, 철쭉, 회양목, 호두나무 등이 자라며 뒷산은 밤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정원축조물< 庭園築造物 >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집은 옹주의 시집으로서 궁집이라고 불리웠으며 대략 18세기< 世紀 > 말< 末 >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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