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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정용채가옥 - 화성정용채가옥(華城鄭用采家屋)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화성군 서신면 궁평리 109

나지막한 뒷산이 손바닥을 가볍게 오므린 토성< 土城 >의 모양으로 둘러있고 이 산의 한 맥이 집 왼쪽을 돌아서 집 앞 60m 정도 거리에 얕으막한 동산을 만드는 바 지리상으로 안산< 案山 >에 해당하며 속칭< 俗稱 > 노적가리라고 한다. 진입로< 進入路 >는 이 동산의 남쪽 옆을 끼고 북쪽에 나 있는 대문간을 향해 S자< 字 >로 꼬불꼬불 돌아 들어간다. 집의 오른쪽은 뒷산 끝이 나지막히 돌아들어 뒤뜰을 감싸돌고 그 끝은 터져 있어서 집의 수구< 水口 >에 해당하며 수구< 水口 > 너머로 멀리 조산< 朝山 >이 보인다. 평면 형태는 일자< 日字 > 모양의 전형적< 典型的 >인 양반가옥으로서 대문< 大門 >을 정면< 正面 >으로 내지 안고 북쪽 측면< 側面 >으로 하게끔 계획되었다. 안채는 우리가 통상 보는 좌우대칭< 左右對稱 >의 ㄷ자형< 字形 > 평면인 바 중앙에 3간< 間 > 대청을 두고 왼쪽에 부엌, 안방, 찻방과 오른쪽에 부엌, 건넌방, 마루를 배치했다. 다른점이 있다면 안방 쪽은 뒷퇴를 만들어서 툇마루를 시설하고 여기에 연결해서 뒤뜰로 뒷방을 내었다. 사랑채는 4간< 間 >의 일자형< 一字形 > 전후퇴집으로서 오른쪽 2간< 間 >은 통간< 通間 >인 사랑대청으로 꾸며졌고 왼쪽 2간< 間 >은 구들로 만들어졌으며 앞퇴에는 전체적으로 마루를 깔았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안사랑 뒤 골방에서 뒷마루를 통해서 은밀하게 안대청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대부< 士大夫 >집에서 통상 쓰는 수법이다. 안채와 사랑채 앞에는 길다란 행랑채가 가로막아 안마당과 사랑마당을 형성< 形成 >한다. 여기에 연결되어 사랑마당 북측< 北側 >에는 대문채가 놓였는데 솟을대문으로 처리되었다. 안채 남쪽에는 비탈을 따라 나무울타리를 널따랗게 두르고 뒤뜰 공간< 空間 >을 만들었다.
뒤뜰에는 가운데 우물이 있고 주위에는 감나무와 소나무가 심어져서 뒷산의 수목< 樹木 >으로 이어진다. 솟을대문이 상량문에는 1887년에 지은 것으로 명기< 明記 >되었으나 안채와 사랑채는 이보다 앞선 19세기< 世紀 > 초< 初 >의 건물로 추측된다. 구조는 안대청 중앙을 긴보5량으로 처리하고 양측면을 통상 쓰는 1고주5량이다. 따라서 가운데 기둥이 중도리의 바로 아래 놓이지 않게 한다. 대들보는 옆구리를 배부르게 하고 배쪽의 장혀 면만 다듬은 항아리 모양이다. 납도리 집이며 장혀와 헛창방 등은 일절< 一切 > 쓰지 않은 고식 방법이다. 대공은 판대공이고 비교적 높으며 대공이 받치고 있는 상도리 받침은 고졸< 古拙 >한 맛이 나는 우진각 모양이다. 사랑채의 구조< 構造 > 역시 1고주5량이며 안채의 구조와 거의 같다. 댓돌은 한벌대 긴 장대석으로 두꺼운 맛을 자랑한다.
건넌방 창문이나 사랑방 밀장의 창살은 아자< 亞字 > 문양< 文樣 >으로서 퍽 인상적이다. 사랑방 앞 툇마루에는 한 개의 나무를 깎아 만든 통난간을 설치하였는데 머름처럼 네모꼴 테를 보이고 사이는 빈지로서 막아 간결< 簡潔 >하게 처리하고 있다. 물론 출입< 出入 >하는 곳은 난간을 터 놓고 있다. 어느 주택< 住宅 >에서나 보는 현상으로 이 집에도 과실수를 집 주변< 周邊 >에 많이 심어서 집 앞에는 호도와 대추나무, 뒤뜰에는 감나무 등이 심어졌으며 앞동산과 뒷산의 참나무, 소나무 등에 연결되어 하나의 자연< 自然 >에 파묻힌 아름다운 공간< 空間 >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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