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반월성<半月城> 북서쪽 계림<鷄林>에 인접하여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지름 22m, 높이 5.3m이다. 봉분의 밑부분에 자연석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경주시내 평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는 달리 호석<護石>에 자연석 받침돌을 받쳐 놓은 것으로 신라 횡혈식 석실분<新羅 橫穴式 石室墳>의 호석<護石>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 고분의 봉분 규모도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보다는 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에 알맞은 것으로 평지고분이지만 매장주체는 횡혈식 석실<橫穴式 石室>일 가능성이 많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놓여 있는데 후대에 설치된 것이다.
한편 이 고분 주위로는 평면 장방형<長方形>으로 이 고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터 흔적이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 고분이 일찍부터 특별히 보호되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재위<在位> 356-402)은 성이 김<金>씨이고, 아버지는 말구각간<末仇角干>이며, 왕비는 휴례부인<休禮夫人>이다. 신라<新羅>에서 김씨<金氏>로서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金>에 이은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지만 이후의 신라왕<新羅王>들이 모두 내물<奈勿>의 후손으로 신라 김씨왕조<新羅 金氏王朝>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신라는 이 왕 때에 이르러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낙동강<洛東江> 동쪽을 아우르는 왕국<王國>으로 성장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의 장지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능<陵>이 점성대 서남<占星臺 西南>에 있다고 하여 현위치를 가리킨다.
그러나 내물왕<奈勿王>은 후세의 큰 추앙을 받은 실질적인 김씨왕조<金氏王朝>의 창시자로서 그 능<陵> 규모 또한 컸을 것이고, 재위시기로 보아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어야 할 것인데, 현재의 능<陵>은 규모가 작은 석실분<石室墳> 형식이어서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내물왕릉<奈勿王陵>을 신라 최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인 대능원<大陵苑>의 황남대총<皇南大塚>으로 비정하는 학계의 견해도 있으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을 존중하면서 내물왕계<奈勿王系> 계승의식을 표방한 신라 하대<新羅 下代> 왕실<王室>의 수축<修築>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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